채움과 비움
Nov 10, 2025
유의랑의 작업은 채움과 비움이라는 회화의 근본적인 질문을 집요하게 되짚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기보다, 대상과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패턴과 리듬에 주목하며 화면을 구성해왔다. 세밀한 붓질로 반복적으로 채워진 화면은 즉각적인 인상보다는, 천천히 바라볼수록 드러나는 밀도를 지닌다.
작품 속 꽃과 달항아리 같은 일상적인 소재는 장식적 재현의 대상이 되기보다, 패턴과 색채를 통해 다시 조직된다. 앙리 루소를 연상시키는 소박하고 원초적인 감각은, 치밀한 채움의 과정과 결합되며 독특한 회화적 언어로 확장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회화라기보다 ‘일기에 가까운 그림’이라고 말하며, 화면 위에 축적되는 시간과 감정의 흔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유의랑의 작업 방식은 오랜 호흡과 수공예적인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다. 꼼꼼하게 채워진 화면은 작가의 집중된 시간의 결과이자, 관람자에게는 시선을 머물게 하는 여백으로 작용한다. 빽빽하게 채워진 패턴 속에서도 답답함보다는 관조의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작업이 완성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이러한 회화적 실천은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의랑 풍의 그림’이 하나의 흐름으로 회자될 만큼, 그의 작업은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왔다. 오늘날까지도 유의랑은 채움과 비움, 반복과 리듬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통해, 회화가 지닐 수 있는 지속성과 조용한 힘을 꾸준히 증명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