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쌓인 것들

Jan 5, 2026

조용히 쌓인 것들

하신혁의 작업은 흙이라는 원초적 재료에 시간을 쌓아 올리는 과정을 조형적 언어로 전개한다. 손으로 길게 말아 쌓아 올리는 코일링(coiling) 기법은 단순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재료와 행위, 시간의 축적이 화면에 남는 구조적 기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축적의 과정은 외형적으로 단정하고 간결한 형태를 만들어내면서도, 층층이 쌓인 흙의 결 속에 미세한 진동과 깊이 있는 울림을 남긴다.

작업에서 사용되는 도자의 전통적 기법은 기능적 목적을 배제한 채, 조형적 오브제로 다시 해석된다. 흙의 농담과 결, 그리고 단색조 표면은 보는 이의 시선을 차분하게 유도하며, 형태가 아닌 감각적 질서와 사유의 여백을 경험하게 한다. 이렇게 형성된 표면의 중첩은 조용하지만 풍부한 감각적 공간을 만들어, 관람자에게 깊은 사유의 장을 제공한다.

하신혁 Form-210508
Photo by ARTN Edition

하신혁의 작업은 흙 자체가 지닌 물성과 작업 과정의 시간성을 결합해, 흙의 층위와 결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잔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한 기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의 호흡과 손길이 응축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작품은 비어 있으면서도 무수한 감각적 가능성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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