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큐와 소멸 앞에서

May 7, 2026

#5. 이큐와 소멸 앞에서

꽃은 떨어지고, 나비는 남는다: 데이미언 허스트를 마주하는 법

일요일 아침, 평소라면 한산할 이른 시간이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놀랍게도 데이미언 허스트를 보기 위해 모인 부지런한 관객들이었다. 전시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관객이 어느 이름 앞에서 움직이는지 몸으로 기억하게 되는데, 한때 이런 풍경은 주로 모네, 반 고흐, 르누아르, 고갱 같은 이름 앞에서 익숙했다. 사람들은 ‘명화’를 보러 갔고, 전시장은 교과서와 포스터, 미술관 굿즈숍을 거쳐 이미 대중의 기억 안에 각인된 아름다움으로 붐볐다.

그런데 지금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관객은 더 이상 익숙한 명화 앞에서만 줄을 서지 않는다. 론 뮤익의 거대한 신체 조각 앞에서도, 데이미언 허스트의 죽은 상어 앞에서도 기꺼이 기다린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미술이 대중화되었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시 관객은 이미 미술을 자기 시대의 불안과 욕망을 확인하는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장 전경
PORTRAIT IMAGE CREDIT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죽음을 포름알데히드 속에 보존하는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대중을 설득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수조 안에 넣고, 잘린 소의 머리와 파리의 생애를 하나의 유리 장치 안에 가두었다. 그러나 허스트의 죽음이 늘 거대한 스펙터클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골드스미스 재학 시절 만든 약장 작품 〈죄인〉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긴 빈 약병과 포장재에서 출발한다. 욕실 벽의 작은 캐비닛 안에 남은 약의 흔적들은 한 사람의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병과 노쇠함과 믿음의 시간을 조용히 드러낸다. 허스트에게 약장은 현대인이 의학에 바치는 작은 제단이었다.

이 조용한 약장과 눈부신 해골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인간 두개골 형상에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고 실제 인간의 치아를 결합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에서는, 죽음이 무덤의 어둠이 아니라 눈부신 표면으로 나타난다. 허스트의 작품 앞에서 죽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존되고, 진열되고, 장식되고, 때로는 너무나 값비싼 빛을 얻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잔혹한 것이 아니라 차갑게 정확하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불멸을 욕망하고, 과학과 의학과 자본을 통해 삶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어 하는 방식을 그는 거의 장식처럼 보여준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된 수천 마리의 나비 이번 전시에서 오래 남은 장면 중 하나는 나비 삼면화였다. 장미창이라기보다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형식이었다. 멀리서 보면 숭고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잔혹하다. 수천 마리의 실제 나비 날개가 금빛 화면 위에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는 오래전부터 영혼과 부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허스트의 화면에서 그 상징은 언제나 죽음의 물질성과 함께 놓인다. 날아오르던 생명은 멈춰 선 날개가 되고, 그 날개는 다시 장식이 되며, 장식은 종교적 이미지처럼 숭고해진다.

허스트의 나비가 이상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생명의 상징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이미 죽은 생명의 흔적이다. 아름답지만 순진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무해하지 않다. 멀리서 볼 때 관객은 색과 패턴에 이끌리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 아름다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허스트는 아름다움을 허락하되,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못하게 만든다.

벚꽃, 허스트답지 않은 허스트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중간에 꽤나 이질적인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벚꽃 연작 〈신착 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허스트의 차갑고 실험실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밝은 색채, 만개한 벚꽃 잎, 질감이 느껴지는 회화적인 표면은 얼핏 보면 익숙하게 포근하고, 지나치게 평범한 아름다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벚꽃은 순진한 생명의 이미지가 아니다. 벚꽃은 만개하는 순간 이미 낙화를 품기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시기는 동시에 곧 사라질 시간을 향해 있다. 벚꽃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 점에서 허스트의 벚꽃은 죽음에서 벗어난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소멸의 시간을 전통 회화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이미지에 가깝다.

꽃은 떨어지고, 나비는 남는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벚꽃 연작과 나비 삼면화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작가의 세계 안에서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벚꽃은 생명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순간 속에 곧 사라질 소멸을 담고, 나비는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정지된 날개와 반복되는 패턴으로 남는다. 꽃은 낙화하기에 아름답고, 나비는 멈춰 섰기에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죽음이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표면 아래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반복과 에디션이라는 형식도 다시 생각해보면, 허스트의 작업이 처음부터 하나의 유일한 손맛으로만 완결되는 세계가 아니었다는 점과 연결된다. 반복, 보존, 패턴화는 이미 그의 작업 안에서 오래전부터 작동해온 구조였다.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방식으로 변주되고, 더 많은 시선 앞에 놓이며, 소유 가능한 단위로 나뉘는 순간에도 작가의 질문은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사라진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것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가’. 그 질문들 사이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결국 이번 전시의 제목이다.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글 이혜민 큐레이터18년간 미술관과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 왔다. 한국일보 문화사업단, 일민미술관, 서울경제 백상미술정책연구소를 거치며 작품 앞의 순간을 기록했다.

  • Info
    • MMCA 서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 2026년 3월 20일 ~ 2026년 6월 28일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www.mm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