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순수함을 다시 바라보는 일, 테즈 킴
May 8, 2026
테즈 킴의 작업에는 표정을 읽기 어려운 소년과 소녀, 둥실 떠오르는 존재들, 그리고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특정한 캐릭터라기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시간이 지난 뒤 그 시절을 돌아보는 현재의 마음이 겹쳐진 형상에 가깝다. 작가가 오래 붙들고 있는 주제는 ‘순수함’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순수함은 단순한 천진함이나 미숙함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끼는 상태, 언어로 설명되기 전의 감정,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잊혀진 마음의 결에 가깝다.
Q.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순수미술로 전향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순수미술에 대한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 길을 선택할 용기가 부족해 현실적인 선택으로 디자인을 전공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기에 3D 프린팅이 큰 흐름으로 떠올랐고, 귀국 후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비와 기술, 모델링 환경이 자연스럽게 갖춰지다 보니 그것을 활용해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나둘 연결된 작업이 지금의 작가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Q. 작가님이 얘기하는 ‘순수함’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때 바라보던 세상과 감정들이 지금은 부재한 것이 되었고, 그래서 더 선명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하나의 온전한 세계처럼 느껴졌어요.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였고, 판단보다 다정함이 먼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상태를 순수함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작업의 가장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Q. 작품 속 소년은 자신을 투영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A. 굳이 자신을 재현하려고 만든 존재는 아닙니다. 다만 제 기억에서 출발한 만큼 자연스럽게 저의 모습이 스며 있을 겁니다. 동시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금의 저 역시 함께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소년은 한 사람의 초상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온 순수했던 시절과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형상에 가깝습니다. 결국 저의 모습이면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Q. ‘둥둥이’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어린 시절 저는 하늘에 둥둥 떠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볍게 떠 있는 상태였죠. 그때 느꼈던 자유롭고 황홀한 감각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어느 순간 더는 그 꿈을 꾸지 않게 되었고, 저는 그것이 어린 시절의 상징 같은 기억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둥둥이는 현실에는 없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봄날의 곰’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실재하지 않지만 이상할 만큼 생생하고, 현실 바깥에 있기에 오히려 더 따뜻하게 기억되는 감정 말입니다.


Q. 바나나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A. 바나나에는 특별히 심오한 의미가 있다기보다, 형태와 색, 질감이 제가 생각하는 순수함과 잘 맞닿아 있습니다. 휘어진 곡선, 밝은 노란색, 말랑하고 부드러운 물성, 그리고 달콤한 감각까지. 그런 요소들이 어린 시절의 기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때로는 작업 안에서 바나나가 장난스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공격성이 있더라도 상처를 남기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Q.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부터 특정 장르의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화가가 되거나 조각가가 되기보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에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접근해왔습니다. 매체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더 해보고 싶은지도 듣고 싶습니다. A. 최근에는 제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의 틀 안에 스스로 갇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익숙한 방식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대담하게 제 안의 생각을 꺼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그것이 어떤 형식일지는 저 역시 궁금합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인가요? A. 요즘 저는 예술이란 예술가가 남겨놓은 삶의 흔적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예술인지 정의하려 애쓰기보다,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 예술가인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사회가 덧씌운 기준을 걷어내며, 내 안의 것을 드러낼 용기를 가진 사람. 그리고 그것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관객들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 주길 바라시나요? A.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추거나,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을 느끼는 것. 그 작은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Interview by ARTN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