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자기에 담긴 마음, 소중한 메시지 — 김시현

Feb 9, 2026

[인터뷰] 보자기에 담긴 마음, 소중한 메시지 — 김시현

김시현 작가의 화면에는 감싸는 행위가 남아 있다. 싸고, 묶고, 매듭짓는 일. 무엇을 숨기기보다는, 건네기 전 잠시 멈추는 동작에 가깝다. 그가 그리는 보자기는 늘 단정하다. 화면의 중심에 놓이거나, 조심스럽게 접힌 채 정지해 있다. 하지만 그 고요한 형상 안에는 시간이 쌓여 있다. 기억과 관계, 누군가의 손길이 겹쳐진 시간이다. 김시현은 한국적인 이미지를 다루지만, 과거를 불러오지 않는다. 그가 붙잡고 싶은 것은 전통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감정의 방식. 보자기는 누군가에게 건네졌던 마음의 형태이고, 그의 회화는 그 마음이 머물렀던 자리를 조용히 남겨둔다.

김시현
김시현 작가 Photo by ARTN Edition

Q.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진학을 바로 하지 않고 텀을 두게 된 시간은 어떤 영향을 남겼나요? A. 처음에는 입시에 떨어져 바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잠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신촌에서 근무하며 출근길 전철 안에서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을 보며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죠. 돌아보면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법, 관계 속에서 배려하고 인내하는 태도를 배웠고, 그 경험은 지금의 작업 태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대학원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졸업과 동시에 작가가 된 듯 느끼지만 현실은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인물화, 추상, 정물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공모전에도 수없이 도전했지만, 결국 ‘내 것’이 없다는 공허함이 컸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제 작업의 방향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Q. 대학원에서 만난 고영훈 선생님의 영향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A. 선생님은 유행을 좇기보다 정석대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분이셨습니다. 현장에서 묵묵히 지속하는 태도 자체가 큰 배움이었고, 저 역시 서두르기보다 한 발씩 나아가야겠다는 기준을 세우게 됐습니다.

Q.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으라’는 조언이 전환점이 되었다고요. A. 교수님께서 쉽게 찾은 소재는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으니 발 아래에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 이후 어머니를 떠올렸고, 본가 장롱 속에 접혀 있던 어린 시절의 이불보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Q. 보자기 작업은 관계와 매듭에서 시작된 흐름처럼 보입니다. A. 처음부터 보자기를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천과 천을 매듭으로 연결하는 작업에서 출발했고, 관계를 떠올리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보자기에 대한 글을 접하며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현재의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시현 작가 작업 사진
김시현 작가 작업 사진
김시현 작가 Photo by ARTN Edition

Q. ‘Precious Message’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보자기는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선물을 건넬 때 전해지는 감정, 그 마음을 ‘소중한 메시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비녀, 노리개, 꽃 같은 오브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A. 보자기는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소재이기에 저만의 상징이 필요했습니다. 비녀는 저의 시그니처이자 여성성을 상징하며, 노리개 역시 보자기를 의인화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꽃 또한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상징적 요소로 사용됩니다.

Q. 전통 이미지에 코카콜라, 바이올린 같은 서구적 오브제를 함께 배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소재가 지나치게 고전적으로만 보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현대적 감각을 더하기 위해 시대를 초월한 상징적 오브제를 함께 배치했습니다.

Q. 보자기를 연출해 촬영한 뒤 작업하신다고요. A. 묘사 작업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일한 빛과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합니다. 이는 사실적 회화를 하는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Q. 최근 화면 구성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이라고요. A. 기존에는 보자기를 화면 중앙에 배치했지만, 반복 속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구도를 과감히 변형하거나 일부만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확장할 계획이며, 하반기 개인전에서 그 변화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Q.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가져가길 바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A. 많은 설명 없이도 이미지 자체가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길 바랍니다. 옛 이불보를 마주했을 때처럼, 마음이 잔잔히 데워지는 감정이면 충분합니다.

Interview by ARTN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