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연리, 흙의 물성을 엮다 — 김인식
Dec 8, 2025
김인식은 흙이 가진 본질적인 성질을 끝까지 따라가며 작업하는 도예가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백연리(白練理)’ 기법이다. 전통 연리문 기법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이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 다른 백색의 흙만을 사용해, 흙의 질감과 수축률, 밀도의 차이를 드러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한다.
김인식의 작업은 통제와 우연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형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계획되지만, 표면에 나타나는 문양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되지 않는다. 손과 물레, 깎아내는 과정, 그리고 두 번의 소성을 거치며 흙은 스스로의 표정을 드러낸다. 그의 도자는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흙과 함께 지나온 시간의 기록에 가깝다.
Q. 작업을 대표하는 ‘백연리’ 기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A. 전통 도자 기법 중에 ‘연리문’이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문양을 만들어내는 기법인데, 저는 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응용했습니다. 색이 다른 흙이 아니라, 성질이 조금씩 다른 백자의 흙 두세 가지를 섞어 작업하고 있고, 이 방식을 ‘백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흙의 색보다는 물성의 차이에 집중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서로 다른 흙을 섞는 작업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흙마다 수축률과 건조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면 갈라지거나 뒤틀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흙을 사용해 실험을 반복해왔고, 지금은 어느 정도 수축률을 맞춘 상태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통제한다기보다는, 작업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놓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안에서 생기는 미묘한 차이와 변화는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그렇다면 작업에서 ‘우연’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형태 자체는 스케치를 통해 어느 정도 계획합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제 의도대로 나오도록 조율하죠. 하지만 문양은 다릅니다. 흙이 어떻게 섞였는지, 손으로 만지고 물레질을 하고, 마지막에 깎아내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끝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 우연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작업합니다.
Q.문양이 드러나는 순간은 예측 불가능한가요? A. 네. 깎아내는 과정이 되면 저 역시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문양이 고르게 나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선이 진하게 남거나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 차이가 작품의 표정이 되고, 하나의 결과로 남습니다.
Q. 소성 과정 역시 작품의 인상을 크게 좌우할 것 같습니다. A. 초벌 소성을 거치면 표면이 굉장히 매끄럽고 고운 느낌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1250도에서 1260도 사이의 재벌 소성을 지나면 흙이 자화되면서 미세하게 틀어지거나 주름이 생깁니다. 그 과정에서 문양과 표면이 훨씬 더 살아납니다. 의도하지 않은 변화지만, 그 결과가 작업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 표면에 회오리나 나선형, 혹은 대리석 같은 무늬가 보이기도 합니다. 의도된 형태인가요? A. 의도적으로 특정 문양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핸드빌딩과 물레 작업을 병행하는 혼합 기법을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선형이나 대리석 같은 무늬가 나타납니다. 흙마다 물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문양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현재 오브제와 실용기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에디션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A. 네. 입체 작업을 평면 이미지로 옮겨, 실제 사이즈의 감각을 유지한 에디션 작업을 아트앤에디션과 했습니다. 도자 오브제가 가진 조형과 문양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습니다.
Q. 최근 작업의 방향에 영향을 줄 변화도 있다고요. A.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주된 흙이 단종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흙을 찾기 위해 테스트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존 작업과는 색감이나 질감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고, 작업의 방향성에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인식의 작업은 흙을 지배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흙의 성질을 맞추고,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는 과정 속에서 그의 문양은 완성된다. 형태는 의도에 따라 정제되지만, 표면은 언제나 흙의 시간에 맡겨진다. 백연리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의 도자는, 흙과 함께 지나온 시간과 선택의 흔적을 조용히 드러낸다. 통제와 우연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김인식의 작업은 비로소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된다.
Interview by ARTN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