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정한 그림일기, 윤선홍
Jul 3, 2026
윤선홍의 작품에는 꽃과 식물이 자주 등장한다. 창틀 위에 놓인 화분, 빛을 향해 자라나는 잎, 화면 가득 피어난 색들은 친근한 정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지나온 하루와 기억,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그림일기’라 부른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화면 속 작은 흔적들, 스크래치로 드러나는 색과 이야기들은 일상의 감정을 조용히 품고 있다.



Q.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너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다닐 때 노트 앞뒷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친구들하고 인형을 그려서 옷을 입히고, 그런 놀이를 하면서 함께 공유하는 것에서 미술에 대한 즐거움을 느낀 것 같아요. 그 즐거움을 지금까지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Q. 스크래치 기법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에는 밑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덧칠을 했어요. 덧칠을 하고 난 다음에 우연히 그 위에 스크래치를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밑색과 윗색이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색이 나오더라고요. 그 속에 숨은 그림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거기에 저만의 이야기들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Q. ‘그림일기’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A. 스크래치 화면이 단색화의 이미지거든요. 특별히 보지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 안에 오늘 있었던 일, 예전에 있었던 즐거웠던 일, 그 주제와 어울리는 이야기들을 숨은 그림처럼 숨겨 놓습니다.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참 다양하더라고요.
Q. 작품 속 창틀에 놓인 식물들은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A. 작품 〈빛이 좋아〉나 〈다정한 이웃〉에 식물들이 나오는데요. 제일 처음에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어울리는 한두 개의 화분에서 시작합니다. 그 식물들은 오늘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과거에 있었던 친구일 수도 있고, 제 주변의 이야기를 의인화한 존재들이에요.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화분들을 올려놓다 보면 작품이 마무리되더라고요.
Q. 스케치 없이 그림을 그려 나가는 방식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스케치가 완성되어 있는 그림은 신비롭고 즐겁지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생기지만, 저는 처음에 한두 개 정도 소재와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것들을 계속 꾸며 나갑니다. 추억에서도 찾아보고, 현재에서도 찾아보고, 또 이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것도 이어 나가요. 결과는 저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제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어디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시나요? A. 저는 일상에서 많이 받아요. 아주 작은 길거리의 틈에 있는 풀잎이나, 매일매일 보던 것도 어느 날 제 감정을 건드리는 것들이 있거든요. 특별한 어떤 것보다도 매일 24시간 촉각을 세우고,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재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Q. 한국화 작업임에도 서양화적인 인상이 느껴진다. A. 한국화는 대부분 먹선을 뜬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먹선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몸에도 실루엣이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그것처럼 사물도 실루엣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먹선을 없애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수채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Q. 작품의 풍부한 색감은 어떤 재료에서 비롯되나요? A. 저는 장지에 분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채는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아서 일본 물감을 사용하고 있어요. 한국에 수입된 분채는 조금 텁텁한 색이 많아서 베이스 색으로 많이 사용하고요. 일본 교토에 가면 150색을 만드는 장인이 있어요. 그곳에 직접 가서 색을 고르고, 캐리어에 끌고 와서 작업합니다.
Q. 물감을 고르고 가져오는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A. 그곳에서는 100g을 사든 1kg을 사든 양팔 저울에 한 숟갈, 한 숟갈 떠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세요. 저는 한 번 갈 때마다 이틀 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물감을 받고 옵니다. 그렇게 준비한 색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관람객이나 컬렉터들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 주길 바라시나요? A. 저는 제 작품이 일상에 들어 있는 평범한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데 항상 옆에 있는 작품이요. 다정하게 이야기도 걸어주고, 컬렉터들이 작품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Q. 기억에 남는 컬렉터의 반응이 있나요? A. 지난 화랑미술제 때 어떤 컬렉터가 대한민국의 모든 분들이 제 작품을 소장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작품과 이야기를 하면 너무 행복하다고요. 그분이 제 로망을 그대로 전달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작품이 그냥 작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정함을 나누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요. A. 작년 추석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작품의 흐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고요하고 울림이 깊은 화면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의 형태뿐 아니라 흙이 지닌 물성과 존재감 자체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 시도를 해 보고 싶습니다. 시간의 순환과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윤선홍의 그림은 멀리 있는 작품이기보다 가까이 놓인 존재에 가깝다. 매일 바라보는 화분처럼, 같은 자리에 있지만 어느 날은 다르게 보이고, 힘든 날에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그림. 그의 작업은 특별한 사건보다 일상의 작은 감각을 붙잡고, 그 안에서 다정함과 삶의 에너지를 길어 올린다. 윤선홍의 그림일기는 그렇게 화면을 지나 관객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Interview by ARTN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