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미술사와 미학, 음악학, 작곡을 공부했다. 1956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1958년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 그의 인생과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1961년에는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와 첫 만남을 갖고 플럭서스(Fluxus)의 창립멤버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이후 요제프 보이스 등과 함께 독일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기존의 예술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면서 단순하고도 기발한 이미지를 생산해 현대 미술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이며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화가, 비디오 아티스트이면서 철학자인 그는 작고하기 전까지 뉴욕과 유럽을 오가며 작업했다.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삼아 기술적으로 조립하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더욱 다양한 시청각적 즐거움을 제공했다.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서울의 로댕갤러리,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 The Worlds of NamJune Paik'이 열렸다. 비디오아트 이후 레이저아트까지 끊임없이 변혁을 꿈꿔 온 예술 탐험가 그는 2006년 1월 미국 마이애미 자택에서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뉘어 안치되었고 2008년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터가 공식 개관했다.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으며 대중들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